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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드림/미유키 카즈야] 첫눈에 반하다

D hong 2015. 1. 25. 01:04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미유키 군은 안즈한테 첫 눈에 반한거야?"

 

 짧게 침묵이 감돌던 테이블에 유이가 기습적인 질문을 던지자 미유키는 깜짝 놀라 마시고 있던 음료잔을 내려놓았다. 하마터면 맞은편에 앉아있던 유이가 물벼락을 맞을 뻔 했다. 갑자기 튀어 나온 생각치도 못 한 그 질문에 미유키는 한 동안 입을 다물지 못 하고 뻐끔대기만 했다. 이내 입을 앙 다물더니 다짜고짜 그게 무슨 말이냐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보다 너 누구 만나러 가던 중이었다고 하지 않았냐? 늦지 않겠어?"

 

 평소의 그였다면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고 이런 상황쯤 청산유수로 요리조리 빠져나갔을 터, 하지만 지금의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기색을 역력히 표하고 있었다. 게다가 유이는 그보다 한 수 위였다.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걸 알아챈 그녀는 팔짱을 끼더니 딴 데로 말 돌릴 생각 말라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한 동안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몇 초가 흘렀을까, 하지만 미유키에게 그 시간은 몇 시간만큼 길었던 것 같다. 포기한 듯 한숨을 푸욱 쉬더니 자신의 여자 친구를 처음 만났던 날의 기억을 더듬어 보기 시작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즈음 부활동을 끝마친 학생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기 마련이지만 자칭타칭 야구 명문으로 손꼽히는 세이도의 야구부원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밤 늦게까지 훈련을 하기 일쑤였다. 때문에 야구부원들을 서포트하는 매니저들에게도 어두컴컴한 늦저녁에 귀가하는 일은 일상다반사.

 

 격렬한 훈련을 하고 있던 야구부 1군 멤버들에게 금쪽같은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코시엔 예선 시합이 얼마 남지 않아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일 수도 있으나, 혹시라도 무리하다가 부상을 유발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리고 다음 훈련을 위해서도 체력을 아껴두는 편이 좋다. 부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쓰러지 듯 운동장 위에 털썩 하고 주저앉거나 드러누워 숨을 골랐다. 몇 시간째 쉬지를 않았으니 금방이라도 숨이 멎어버릴 듯 한 모에 지켜보고 있던 매니저 하루나와 사치코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중 한 명. 너무나도 태연하게 서 있던 사람이 있었으니, 주전 포수 미유키 카즈야 였다. 그는 무거운 포수 장비는 언제 벗어두었는지 흙투성이가 된 하얀 유니폼 외에 노란 고글과 헬멧 만을 착용하고 있었다. 한참동안 자신의 미트를 이리저리 손보더니 손에서 빼내고는 어딘가를 향하려던 찰나 어느 새 힘든 기색이 가신 쿠라모치가 가장 먼저 그를 캐치했다.
 
 "야 너 어디 가?"
 "미트가 찢어졌어, 창고에 가서 새 걸로 가져올게."

 

 미유키는 훈련 도중 사용하던 미트가 망가진 듯 평소와 같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갔다 올게라고 말하며 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본 쿠라모치는 저 자식은 폐가 4개라도 되는지 왜 저렇게 멀쩡한거냐며 한참을 궁시렁댔다.

 

 창고에 다 다를 무렵 희미하게 콧노래 소리가 들렸다. 왠 노랫소리인가 의아해하며 안을 들여다보니 생전 처음 보는 여학생이 도구 정리를 하고 있었다. 미유키가 당황해서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이내 여학생도 시선이 닿은 걸 알아챈 듯 뒤를 돌아보았다.

 먼저 인사를 건넨 건 여학생 쪽이었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타카코 선배 대신 일일매니저를 하게 된 호시카와 안즈입니다!"

 

 그리고 꾸벅 허리를 숙이니 미유키도 어색하게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했다. 안즈라고 소개한 여학생이 슬슬 눈치를 보며 빼꼼히 시선을 올리니 잔뜩 어색해하던 미유키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순간 미유키는 화악 하고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빠르게 안즈와 마주쳤던 눈동자를 피해 이리저리 굴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이곳 저곳을 살펴보게 되었다.

 

 얼마나 열심히 일에 몰두했는지 높이 올려묶은 머리카락은 여기저기 잔머리가 나와 흐트러져 있었고, 약간 땀을 흘린 얼굴을 청초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송아지같이 크고 또렷한 눈에 금방이라도 빠져버릴 것 같았다. 미유키는 저도 모르게 안즈를 진심으로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기…"
"아, 어어."

 

 미유키가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물음표를 띄우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미유키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에게 무언가 말하려고 하던 차 부원들에게 나누어 줄 드링크를 가지러 갔던 유이가 돌아와 어색한 공기가 사라졌다.

 

 유이가 미유키를 보더니 왜 여기있냐고 물어보자 새 미트를 가지러 온 걸 떠올린 미유키가 부랴부랴 창고 안쪽으로 들어가 글러브 있는 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뒷 모습에서 지금 그가 긴장하고 있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행색에 유이는 질린 표

정을 짓고서는 쟤는 또 왜저러냐며 의아해했다. 안즈는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멀뚱멀뚱 미유키의 뒷 모습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유이가 드링크를 나눠주러 가자며 안즈를 끌고나간 뒤에야 미유키는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는 난생 처음 느낀 감정에 생각보다 엄청 당황하고 있었다.

 

 휴식 시간이 끝나자 훈련이 재개되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부원들은 언제 그랬냐든 듯 다시 팔팔해져서는 열심히 훈련을 따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기존 매니저 세 명과 안즈도 함께 운동장 한 켠에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미유키는 열심히 훈련에 임했으나 안 그런 척

하면서도 은근히 안즈가 있는 곳을 신경쓰고 잠깐 잠깐 그 곳을 곁눈질해보기도 했다.

 

 훈련이 끝나고 부원들 중 몇 명이 안즈에게 관심을 보였으나 그녀의 보디가드를 자청하는 유

이가 철벽같이 가로막아 잔뜩 실망한 채로 기숙사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유이가 안즈에게 빈 드링크 병을 수거해달라고 부탁하고 나머지 세 명의 매니저들은 운동장에 흩어져 있는 공이나 배트를 주으러 각자 흩어졌다.

 

 안즈는 창고에서 부르던 콧노래를 부르며 드링크병을 쟁반에 한 데 모아 번쩍 듦과 동시에 자신의 양팔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깜짝 놀라 그 근원지를 바라보니 미유키가 제 손에 쟁반을 가로채가 있었다.

 

 "탕비실까지 가는거지? 들어줄게."
 "아, 아뇨 주세요. 혼자 들 수 있어요!"

 

 미유키는 됐다며 앞장서 교내로 향했다. 안즈는 순간 황당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리고서는 성큼성큼 걸어가는 미유키의 뒤를 쫓아 쪼르르 달려가 옆에 나란히 서서 함께 탕비실을 향했다. 창고에서 첫 만남을 이룬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 때와는 달리 이상하게 어색하지도 않았고 짧게나마 대화도 나누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집까지 바래다주고, 다음 날 부터 이것저것 얘기하…"

 

 아차! 유이의 함정에 걸려 들어 미유키는 자기가 안즈에게 첫 눈에 반했던 첫 만남의 기억을 구구절절 얘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걸 눈치챘을 때 유이는 이미 한 껏 재밌게 잘 들었다는 듯 만면에 미소를 띄고 있었다. 미유키는 또 다시 한숨을 내 쉴 수 밖에 없었다.

 

 "아하, 역시 그 날이었구만. 어쩐지 너 평소랑 다르게 진짜 바보같더라."

 

 바보라니, 아니 그 보다 다 알면서 물어본거야 설마? 미유키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너 진짜 못됐다."
 "칭찬으로 들을게."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요?"

 

 승자와 패자의 모습이 확연히 갈리는 순간이었다. 그 때 화장실에 갔던 안즈가 돌아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냐고 물으며 자연스럽게 미유키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냥 시덥잖은 야구부 얘기 중이었다고 둘러대려고 했는데 유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안즈에 대한 재밌는 얘기♪"
 "네?"

 

 쟤가 진짜. 안즈가 의문 가득한 얼굴이 되물어보았고 미유키는 참다 참다 슬슬 분노가 솟아오르기 직전이었다. 물론 그 걸 유이가 알아보고 재빨리 코트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덩달아 안즈와 미유키도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유이 선배 벌써 가시게요?"
 "이만 약속 장소에 가 봐야겠어. 그리고 누구누구씨는 내가 여기서 빨리 나가는 걸 어엄청 바라는 것 같아서 말이야."

 

 드디어 가시는 군, 미유키는 조용히 안도하며 내려 놓았던 음료잔을 다시 들었다.

 

 "어떤 재밌는 얘기 했는지는 남자 친구한테 물어봐."

 

 음료를 마시기 무섭게 또 다시 맞은 편에 물벼락을 퍼부을 뻔 했다. 마지막까지 틈을 주지 않는 유이의 맹공격에 미유키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 작게 소읍을 내 뱉었다.

 

 벌써 카페 밖으로 나가 창문 밖에서 손을 흔드는 유이에게 안즈도 있는 힘껏 양 손을 흔들어주었다. 창가쪽에 앉아있던 미유키가 얼른 사라져 버리라고 몰래 손 짓 한 건 비밀.

 

 유이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미유키는 한 시름 놓고 소파에 풀썩 하고 주저앉았다. 아무것도 안했는데 야구부 훈련이라고 치른 것 만큼 힘들다. 이제 괜찮겠지 하고 남은 음료를 마시기 위해 다시 잔을 들었다.

 

 "그래서 선배, 나에 대해서 무슨 재밌는 얘기를 했단 거에요?"

 

 빨대에서 쪼옥 하고 음료를 다 마신 후 빈 잔에서 나는 소리가 들렸다. 다 마셔서 다행이다, 하고 미유키는 작게 안도했다.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잔을 내려 놓고서는 슬쩍 안즈를 보더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기력 충전에 이만큼 좋은 배터리가 없지. 미유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아무 생각도 안하고 낮잠이 자고 싶어졌다.

 

 영문을 알 리 없는 안즈는 의아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빤히 미유키를 쳐다 보았다.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