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연주는 소녀의 감탄을 자아냈다.
방과 후 조용한 교내 음악실에는 치아키와 리호 단 둘만이 있었다. 오늘은 왜인지 꼭 그의 연주가 듣고 싶다던 그녀의 요청이었다.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는데 웬일로 그는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특별히 거절할 명분이 없었고 마침 그도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던 참이었다.
가만히 치아키의 연주를 듣던 리호는 그야말로 넋이 나가있었다. 현란하면서도 섬세한 손놀림에서 태어나는 멜로디가 단 번에 그녀의 귀를 감싸 안았다. 창 밖에는 오전부터 계속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직 한 여름, 오후 5시를 조금 넘긴 시간임에도 한 밤중인 것 마냥 캄캄했다. 오늘은 부활동도 없는 날이라 대다수 학생들이 바로 귀가를 한 탓에 교내가 유난히 더 조용했다. 때문에 치아키의 바이올린 소리는 마치 커다란 스피커로 켜 놓은 듯 귓가에 아주 크게 맴돌았다.
치아키의 악기는 리호가 가지고 있는 바이올린과는 다른, 전자 바이올린이기에 편견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도 적지않다. 대표적으로 그의 아버지가 그랬다. 하지만 그의 멜로디는 그 어느 바이올린의 연주와 견주어도 절대 손색이 없는 훌륭한 멜로디였다. 그의 연주에서 넘쳐 흐르는 매력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기에 충분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연주를 들으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진난 고교에 들어오기 전 알고 있던건 그저 그의 이름과, 관현악부 부장이라는 정보 뿐. 하지만 학교 광장에서 처음 마주 쳤을 때 그녀는 누구보다도 그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난생 처음 들어 본 낯선 멜로디. 하지만 가슴이 무척 설렜던 느낌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리호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관현악부에 입부한 후 리호의 시선은 항상 치아키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기분 나쁘기는 커녕 오히려 너무나도 즐겁기만 했다. 학기 내내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동경하는 마음 뿐이었는데, 요즘은 그를 보면 조금 더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이 드는 것 같다. 동경이란 감정에 한 가지가 더 해진 것 같았다.
"어이."
"!"
"꼬맹이가 기껏 들려달래서 연주해줬더니, 딴 생각하면서 웃어?"
아, 잘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모르게 작게 웃어 버린 모양이었다. 그의 연주는 이미 끝난 것 같았다. 미안해져서 사과하려던 찰나 그는 신경쓰지 않는 듯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비가 점점 거세지는 것 같으니까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바래다 줄게."
"아 네!"
"근데 무슨 재밌는 생각을 그렇게 했어? 내 연주중에."
가방을 챙기는 중 치아키가 물어왔다. 여유롭게 웃고는 있지만 질문 속에 작은 가시가 돋아있는 느낌이었다. 안 그런척 하면서 은근히 뒤 끝 있으시네. 리호는 머뭇거리는 것도 잠시 결국에는 '비밀이에요.'라고 얼버무렸다. 싱거운 대답에 치아키는 투덜거렸지만 그녀는 영문 모를 미소만 지었다.
마음 한 켠에 작게 싹 틔운 감정이 나날이 자라 이윽고 열매를 맺는다. 그녀는 이 열매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 걸 그에게 말하게 될 날은, 언젠가 그녀가 당당하게 그리고 대등하게 그와 마주볼 수 있게 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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