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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전력 드림/오이카와 토오루] 오랜만이야

 "안 탈거야?"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려 하마터면 엘리베이터를 놓칠 뻔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하이힐을 신고 허겁지겁 달려온 탓인지 뒤늦게 발 뒷꿈치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고통을 표출할 틈도 없이 굳어진 표정을 한 채,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던 발을 한 걸음 떼었다. 이윽고 문이 닫히자 순식간에 어색한 공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오랜만이네,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
 "…"
 "유리하쨩은 더 예뻐졌네."
 "…"
 "유리하쨩은 나 보고 싶지 않았어? 난 보고싶었는데."

 

 그렇다, 두 사람. 유리하는 다신 마주칠 일 없을거라 생각했던 오이카와 토오루와 단 둘이 이런 공간, 이런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 굉장히 어이가 없었고 또 껄끄러웠다. 졸업 이후 사적으로 연락을 할 일도 없을 뿐더러, 소식을 듣거나 만날 일도 없었다. 그렇게 근 10여년을 지내왔다. 학창시절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 둘의 거리였으니까.

 

 다른 회사에서 스카웃 되어 온 대리가 그렇게 미남이라며 여직원들 사이에 오이카와의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던 건 불과 사흘 전 일이었다. 처음에는 듣고 귀를 의심하였으나 이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같은 팀도 아니고 소속된 부서가 있는 건물도 다르니, 설마 이 큰 회사에서 만날 일이 있겠나 싶었다. 그리고 그 안일한 생각은 방금 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산산조각 났다. 설마 이렇게 빨리도 얼굴을 맞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오늘같은 주말에까지 출근한 사람은 몇 명 없을 터인데 그 몇 명 없는 직원들 중에서 이렇게 딱 마주치게 될 줄이야.

 

 그와는 말도 섞고 싶지 않았기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서 있는 자리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최대한 뒤쪽 벽에 닿을 만큼 거리를 두고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서류를 든 손에 땀이 나는 것 같았다. 얼른 회의실이 있는 23층에 도착했으면 좋겠는데, 오늘 따라 위로 올라가는 시간이 마치 천 년이라도 되는 것 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대답 안 하면 키스해 버린다."
 "뭐…!"
 "드디어 얼굴 보여주네!"

 

 아차, 기습적인 말에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버렸다. 옛날에는 눈 높이가 두 뼘은 족히 났었는데… 굽 높은 하이힐을 신어 그 차이가 한 뼘으로 좁혀진 오이카와와 시선이 엉켰다. 유리하의 눈동자가 당황감에 물들어 흔들리다가 갈 곳을 잃고 다시 바닥을 향했다. 그 순간 그렇게 기다리던 소리가 들여왔다. 23층에 도착했다.

 

 "비켜줘, 나 회의 준비 해야 돼."

 

 오이카와는 조금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의외로 순순히 앞을 가로막아 섰던 몸을 틀어 주었다. 열린 문 사이로 도망치 듯 나오는데 느닷 없이 튀어 나온 그의 말이 유리하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 회의 나도 가는데."

 

 순간 환청을 들었다고 믿고 싶었다.

 

 "같이 땡땡이 칠까?"

 

 황당해 할 틈도 없이 손목을 잡아채오는 느낌에 고개를 돌리자 10여년전과 똑같지만, 어딘가 다른 미소를 띈 오이카와가 눈을 맞춰왔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엘리베이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