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나쁜 소독약 냄새가 연신 코를 찔러댔다. 메이는 아무 생각없이 눈 앞에 펼쳐진 하얀 천장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이왕 보건실에 온 김에 한숨 자볼까 싶었지만 막상 침대 위에 누우니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한결 편해진 것이 마사상 말대로 감기 기운이 있는건 확실한 모양이다.
항상 마운드 위의 중압감 넘치는 모습으로 있던 이나시로의 에이스가 보건실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는 모습이라니, 아는 사람이 보면 놀랠 ‘노’자가 아닐까. 그 때문에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며 아침부터 야구부 선배들의 놀림감이 된 것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전 수업 시간이라 그런지 복도는 조용했거니와 보건실에 메이 말고 다른 학생은 없었으며, 보건 선생님도 다른 용무를 보러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 혼자 덩그라니 남은 보건실 안에 째깍째깍, 유난히 크게 들리는 시곗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실례합니다.“
그 때였다. 여학생 한 명이 조심스럽게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내 문을 닫고 완전히 보건실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뒤 늦게 선생님이 안 계신걸 알고는 작게 탄식했다.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혼잣말로 무언가 중얼거리는 것이 기다려야 하나, 잠시 후 다시 와야 하나 고민하는 모양이았다.
가려진 커튼 틈새로 지나가는 실루엣만 살짝 보여 누군지 분간 할 수는 없었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메이는 이미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소꿉 친구인 니시노 아카리였다.
“야!”
“헉…! 깜짝이야, 메이?"
일단 교실로 돌아가고 쉬는 시간에 다시 오기로 결론을 내린 그녀는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 했던 보건실에서 갑자기 자신을 붙잡는 목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라 토끼 눈이 되어 뒤를 돌아 보았다. 그 곳에는 아주 익숙한, 장난끼 가득한 얼굴의 소꿉친구가 침대 위에 걸터 앉아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에 아카리는 성큼성큼 걸어가 메이 앞에 섰다.
"너 여기 왜 있어?“
“그러는 넌 여기 왜 왔냐, 땡땡이 치냐?”
“보건실에 아파서 오지, 내가 너 같은 줄 알아?”
아카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메이를 내려다 보았다. 씨익 웃고 있는 그의 표정과 대비되었다.
“누가 들으면 내가 무슨 날라리인 줄 알겠네, 감기 기운 있어서 쉬러 온거거든?”
“감기?”
천하의 나루미야 메이가? 믿을 수 없다는 그녀의 표정에 메이는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저도 사람인데 한 번쯤 아플 수 있는게 당연하건만 도대체가 선배라는 사람이고 소꿉친구고 평소에 자길 뭐라고 생각한단말인가. 나름대로 세상은 착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어째 걱정다운 걱정을 해주는 건 마사상 뿐인지, 메이는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지금 눈 앞에 있는 소꿉 친구가 조금 원망스러워지려 했다.
"메이."
"아 왜 불...!"
잔뜩 삐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쏙 들어가버렸다. 아카리의 손이 메이의 이마를 향한 것이다. 동시에 그녀가 그의 시선에 맞춰 무릎을 굽혀 얼굴도 바로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메이는 순간적으로 훅- 하고 숨을 들이켜 참고 있다가, 그녀의 손이 자신의 이마에서 떨어지자 그제서야 억지로 삼키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확실히 열이 좀 있네. 약은 먹었어?"
"그, 그런 거 안 먹어도 한 숨 자고 나면 다 나을거거든!"
"내 그럴 줄 알았다, 하여간 고집 하고는..."
아카리는 고개를 저으며 의약품이 있는 도구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메이는 그런 그녀를 눈으로 쫓았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녀는 서랍장 한 칸 한 칸을 천천히 살펴보더니 무언가를 손에 쥐고 다시 메이의 앞으로 돌아왔다. 해열제였다. 며칠 전 열이 있던 친구랑 같이 왔을 때 보건 선생님이 저기에서 꺼내는 걸 얼핏 봤는데 기억하고 있는게 맞아서 다행이라며 그녀는 보물이라도 찾은 어린 아이처럼 웃어 보였다.
"자."
"...?"
뭐냐 지금 이 상황은.
깨끗이 씻어낸 스푼에, 마시는 해열제를 조금 덜어서, 그걸 먹으라며 친히 메이의 입 앞까지 대령해주시는 이 익숙한 장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충분히 오해할 상황이다만 아카리는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 오히려 메이가 혼자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귀가 벌개져있더라.
"내,내가 애냐? 혼자 먹을 수 있거든?"
"잔말 말고 떠먹여줄때 드시지? 혼자 있음 먹지도 않으면서!"
자, 아- 해. 저렇게 웃는 얼굴로 협박하는 그녀를 어릴 때도 지금도 메이는 이길 수가 없었다.
머뭇거리다가 결국 눈 딱 감고 입으로 스푼을 낚아채 약을 꿀꺽 삼켰다. 목으로 넘어가는 쓴 맛이 입 전체로 퍼졌다. 한 번 더, 하는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약이 떠올려져 있는 스푼이 다시 눈 앞에 들어왔다. 뾰루퉁한 표정도 잠시, 또 다시 약을 꿀꺽 삼켜낸 메이를 본 아카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곧이어 그녀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운동하는 애가 자기 몸 하나 안 챙기면 어떡하니? 얼마 안 있으면 큰 대회도 있는 애가 자칫 잘 못해서 더 심해지면 어쩌려고! 그리고 성질도 좀 죽여."
"아~ 알았어, 알았어. 네가 내 엄마냐?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요."
"옛날이니 지금이나 걱정해주는데 고마운 건 하나도 모르지?"
흥! 고개를 홱 돌려버리는 아카리를 보자 메이는 조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항상 옆에서 듣기 싫은 잔소리을 늘어 놓을지라도 다 자기를 위한 것임은 틀림 없었다. 그런 그녀의 의중은 이해하려하지도 않고 신경질만 냈더랬지.
그러면서도 얘 삐지면 답 없는데 어쩌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두 사람 다 한 고집 하는 성격으로 어떻게 지금껏 지내왔는지 미스테리할 정도였다.
아.
"그러고보니 넌 어디가 아파서 온거냐? 어디 다쳤냐?"
화제를 돌려보려 한 참이 지나서야 아카리가 보건실에 온 이유를 물었다. 그녀도 그제서야 자기가 이 곳에 온 이유를 떠올린 듯 아차하더니 이내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넌 몰라도 돼. 지금은 안 아픈 것 같아."
"뭐?"
지금은 안 아프다니 뭔 소리야. 의문에 빠진 메이가 다시 물으려 하던 순간 보건실 문이 스륵 열리더니 보건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용무를 다 끝마치고 오신 모양이었다.
무슨 일로 온 건지 궁금해하는 보건 선생님께 아카리가 먼저 쪼르르 달려가 메이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말을 한건지, 선생님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 빼고 무슨 얘기를 하는거야? 나도 좀 알자!"
세 사람만 있는 보건실에서 자기만 쏙 빼고 얘기하는 것을 보고는 메이가 울컥해 버럭하자, 아카리는 이건 여자들만 아는 거니까 어린 애는 몰라도 된다며 딱 잘라 대답했다.
"그럼 나 먼저 간다, 몸 관리 잘 해라~"
"야! 아카리...!"
이름을 불렀을 때 그녀는 이미 손짓 하며 보건실 문 밖으로 사라진 후였다.
항상 마운드 위의 중압감 넘치는 모습으로 있던 이나시로의 에이스가 보건실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는 모습이라니, 아는 사람이 보면 놀랠 ‘노’자가 아닐까. 그 때문에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며 아침부터 야구부 선배들의 놀림감이 된 것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전 수업 시간이라 그런지 복도는 조용했거니와 보건실에 메이 말고 다른 학생은 없었으며, 보건 선생님도 다른 용무를 보러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 혼자 덩그라니 남은 보건실 안에 째깍째깍, 유난히 크게 들리는 시곗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실례합니다.“
그 때였다. 여학생 한 명이 조심스럽게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내 문을 닫고 완전히 보건실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뒤 늦게 선생님이 안 계신걸 알고는 작게 탄식했다.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혼잣말로 무언가 중얼거리는 것이 기다려야 하나, 잠시 후 다시 와야 하나 고민하는 모양이았다.
가려진 커튼 틈새로 지나가는 실루엣만 살짝 보여 누군지 분간 할 수는 없었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메이는 이미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소꿉 친구인 니시노 아카리였다.
“야!”
“헉…! 깜짝이야, 메이?"
일단 교실로 돌아가고 쉬는 시간에 다시 오기로 결론을 내린 그녀는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 했던 보건실에서 갑자기 자신을 붙잡는 목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라 토끼 눈이 되어 뒤를 돌아 보았다. 그 곳에는 아주 익숙한, 장난끼 가득한 얼굴의 소꿉친구가 침대 위에 걸터 앉아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에 아카리는 성큼성큼 걸어가 메이 앞에 섰다.
"너 여기 왜 있어?“
“그러는 넌 여기 왜 왔냐, 땡땡이 치냐?”
“보건실에 아파서 오지, 내가 너 같은 줄 알아?”
아카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메이를 내려다 보았다. 씨익 웃고 있는 그의 표정과 대비되었다.
“누가 들으면 내가 무슨 날라리인 줄 알겠네, 감기 기운 있어서 쉬러 온거거든?”
“감기?”
천하의 나루미야 메이가? 믿을 수 없다는 그녀의 표정에 메이는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저도 사람인데 한 번쯤 아플 수 있는게 당연하건만 도대체가 선배라는 사람이고 소꿉친구고 평소에 자길 뭐라고 생각한단말인가. 나름대로 세상은 착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어째 걱정다운 걱정을 해주는 건 마사상 뿐인지, 메이는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지금 눈 앞에 있는 소꿉 친구가 조금 원망스러워지려 했다.
"메이."
"아 왜 불...!"
잔뜩 삐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쏙 들어가버렸다. 아카리의 손이 메이의 이마를 향한 것이다. 동시에 그녀가 그의 시선에 맞춰 무릎을 굽혀 얼굴도 바로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메이는 순간적으로 훅- 하고 숨을 들이켜 참고 있다가, 그녀의 손이 자신의 이마에서 떨어지자 그제서야 억지로 삼키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확실히 열이 좀 있네. 약은 먹었어?"
"그, 그런 거 안 먹어도 한 숨 자고 나면 다 나을거거든!"
"내 그럴 줄 알았다, 하여간 고집 하고는..."
아카리는 고개를 저으며 의약품이 있는 도구함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메이는 그런 그녀를 눈으로 쫓았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녀는 서랍장 한 칸 한 칸을 천천히 살펴보더니 무언가를 손에 쥐고 다시 메이의 앞으로 돌아왔다. 해열제였다. 며칠 전 열이 있던 친구랑 같이 왔을 때 보건 선생님이 저기에서 꺼내는 걸 얼핏 봤는데 기억하고 있는게 맞아서 다행이라며 그녀는 보물이라도 찾은 어린 아이처럼 웃어 보였다.
"자."
"...?"
뭐냐 지금 이 상황은.
깨끗이 씻어낸 스푼에, 마시는 해열제를 조금 덜어서, 그걸 먹으라며 친히 메이의 입 앞까지 대령해주시는 이 익숙한 장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충분히 오해할 상황이다만 아카리는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 오히려 메이가 혼자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귀가 벌개져있더라.
"내,내가 애냐? 혼자 먹을 수 있거든?"
"잔말 말고 떠먹여줄때 드시지? 혼자 있음 먹지도 않으면서!"
자, 아- 해. 저렇게 웃는 얼굴로 협박하는 그녀를 어릴 때도 지금도 메이는 이길 수가 없었다.
머뭇거리다가 결국 눈 딱 감고 입으로 스푼을 낚아채 약을 꿀꺽 삼켰다. 목으로 넘어가는 쓴 맛이 입 전체로 퍼졌다. 한 번 더, 하는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약이 떠올려져 있는 스푼이 다시 눈 앞에 들어왔다. 뾰루퉁한 표정도 잠시, 또 다시 약을 꿀꺽 삼켜낸 메이를 본 아카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곧이어 그녀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운동하는 애가 자기 몸 하나 안 챙기면 어떡하니? 얼마 안 있으면 큰 대회도 있는 애가 자칫 잘 못해서 더 심해지면 어쩌려고! 그리고 성질도 좀 죽여."
"아~ 알았어, 알았어. 네가 내 엄마냐?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요."
"옛날이니 지금이나 걱정해주는데 고마운 건 하나도 모르지?"
흥! 고개를 홱 돌려버리는 아카리를 보자 메이는 조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항상 옆에서 듣기 싫은 잔소리을 늘어 놓을지라도 다 자기를 위한 것임은 틀림 없었다. 그런 그녀의 의중은 이해하려하지도 않고 신경질만 냈더랬지.
그러면서도 얘 삐지면 답 없는데 어쩌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두 사람 다 한 고집 하는 성격으로 어떻게 지금껏 지내왔는지 미스테리할 정도였다.
아.
"그러고보니 넌 어디가 아파서 온거냐? 어디 다쳤냐?"
화제를 돌려보려 한 참이 지나서야 아카리가 보건실에 온 이유를 물었다. 그녀도 그제서야 자기가 이 곳에 온 이유를 떠올린 듯 아차하더니 이내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넌 몰라도 돼. 지금은 안 아픈 것 같아."
"뭐?"
지금은 안 아프다니 뭔 소리야. 의문에 빠진 메이가 다시 물으려 하던 순간 보건실 문이 스륵 열리더니 보건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용무를 다 끝마치고 오신 모양이었다.
무슨 일로 온 건지 궁금해하는 보건 선생님께 아카리가 먼저 쪼르르 달려가 메이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말을 한건지, 선생님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 빼고 무슨 얘기를 하는거야? 나도 좀 알자!"
세 사람만 있는 보건실에서 자기만 쏙 빼고 얘기하는 것을 보고는 메이가 울컥해 버럭하자, 아카리는 이건 여자들만 아는 거니까 어린 애는 몰라도 된다며 딱 잘라 대답했다.
"그럼 나 먼저 간다, 몸 관리 잘 해라~"
"야! 아카리...!"
이름을 불렀을 때 그녀는 이미 손짓 하며 보건실 문 밖으로 사라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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