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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전력 드림/니시노야 유우] 다른 세계

 

 

 

"좋았어!"

 

 파이팅 넘치는 목소리가 아오바죠사이 체육관에 울러 퍼졌다. 시각은 방과 후. 교내 학생들이 한창 부활동을 진행하고 있을 때 였다.

 

 오늘 아오바죠사이 배구부의 훈련은 홍백전. 레귤러와 백업 멤버를 적절하게 섞은 뒤 두 팀으로 나누어 대전하는 것이었다.

 

 시합 개시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시작된 두 팀의 경기는 도저히 부내 연습 경기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모습이었다. 인터 하이가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평소보다 센 훈련 강도에 지칠 만도 하건만, 멤버들은 불평불만 한 마디도 내놓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질까보냐 더 하겠다며 떼를 쓰는 수준이었다.

 

 말 그대로 열혈, 그 중에서도 열정이라면 자칭타칭 최고라 할 수 있는 소년이 있었다.

 

 "아…… 유우, 방금 그게 뭐라고?"
 "어? 아, 이름하여ㅡ 롤링 썬더!"

 

 홍백전을 지켜보던 코마키는 머리를 얻어맞기라도 한 듯,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자신만만하게 대답한 소년을 보았다.

 

 배구공이 무서우리만치 바닥을 향해 내리꽂고 있었다. 이 스파이크로 득점은 따놓은 당상이었을 터. 하지만 그 예상은 아오바죠사이의 리베로, 니시노야 유우에 의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 누구도 받아낼 수 없을거라 생각한 스파이크를 니시노야는 어렵지 않다는 듯 걷어내고 몸을 한 바퀴 빙글 돌아 멋지게 착지까지 했다. 그리고는 '롤링 썬더'라고 소리쳤는데 아마 방금 내 보인 새 기술의 이름이었나 보다.

 

 코마키는 한 편으로 어이가 없으면서도 역시 굉장한 니시노야의 실력에 실소를 터트렸다. 분명 그도 천재 부류. 현 내 최고의 리베로라 해도 손색 없을 실력의 소유자였다. '유우 답다고 해야할지' 괜시리 그녀 자신이 뿌듯해하며 작성중이던 기록지로 다시 눈을 돌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결과는 홍팀의 승리. 니시노야와 함께 주장이자 세터인 오이카와가 있는 팀이었다. 이와이즈미와 킨다이치 등이 포함된 백팀은 아주 아까운 점수 차로 지고 말았다.

 

 "노야쨩 나이스 리시브였어!"
 "오이카와 선배도 멋진 토스였습니다!"

 

 과연 아오바죠사이의 수호신 답다니까, 라며 오이카와가 칭찬을 하니 눈을 반짝이던 니시노야가 쑥쓰러움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선배의 스파이크도 굉장했다는 둥 노야쨩의 수비는 따라가지 못하겠다는 둥 서로 칭찬이 끊이질 않는 것이 아주 날을 샐 기세더라.

 

 '하여간 쿵짝이 잘 맞는다니까.'

 

 지켜보던 이와이즈미와 코마키가 나란히 생각했다.

 

 

 

 "어라, 코마키쨩?"
 "오이카와 선배."
 "아직 안 갔어?"
 "유우가 아직 안 나와서요."

 

 어느덧 고된 연습이 끝나고 밤이 깊어갈 무렵, 배구부 멤버들이 하나 둘 귀가하였다. 코마키도 교복으로 갈아입은 후 부실 건물 앞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을 오이카와가 발견했다. 웬일인지 항상 같이 다니는 이와이즈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와이즈미 선배는…?"
 "아~ 매정한 이와쨩은 들를 곳이 있다면서 먼저 가버렸어."

 

 흥! 하고 콧방귀를 뀌는 오이카와의 모습에 코마키는 저도 모르게 작게 웃음이 났다. 지금 이런 모습을 보고 세상에 누가,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현 내 최고 세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오이카와도 함께 니시노야를 기다려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였다. 시덥지 않은 얘기 도중 카라스노 배구부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도 하였다. 니시노야가 그 쪽의 작은 미들 블로커와 인상이 조금 무서운 윙 스파이커와도 의외로 죽이 잘 맞는 것 같다면서 코마키가 즐거운 듯 말했다. 신이 나서 말하는 코마키에게 맞장구를 쳐주면서도 '그 쪽의 작은 미들 블로커' 언급에 그의 반응이 조금 미묘해 진 것을 그녀는 눈치채지 못 했다.

 

 "그보다 코마키쨩, 전 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말이야ㅡ"
 "네?"
 "코마키쨩은 노야쨩한테 고백 안 해?"

 

 그녀의 말을 끊고 들이닥친 돌직구에 사고회로가 정지하기라도 한 듯, 웃는 얼굴 그대로 굳어 버린 그녀의 표정에선 그다지 어렵지 않게 그녀가 지금 몹시 당황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그,그,그걸 어,어떻…게…"
 "그거야 우리 배구부에서 모르는 건 노야쨩 뿐일 걸!"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말하는 오이카와의 직구에 코마키는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아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있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렇게 티가 났나? 유우 말고 멤버들은 다 안다고? 그럼 여태 그 의미 심장한 표정들이 다 그런 뜻이었단말이야? 오 마이 갓. 코마키의 머릿속은 이미 과부하로 터져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마키 미안, 교복 단추가 떨어졌길래 찾느라… 왜 그러고 있어? 어라, 오이카와 선배?"
 "야호!"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교복으로 다 갈아입은 니시노야가 하필 이 때 나타나다니! 손까지 흔들며 여유 만만하게 인사를 건내는 오이카와와는 대조적으로, 코마키는 두 손으로 어느새 머리를 부여 잡고 복잡한 표정으로 니시노야를 바라보았다. 묘한 상황에 니시노야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노야쨩도 나왔으니 나도 이제 그만 돌아갈게. 코마키쨩 힘내."

 

 타인의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사악해 보일수도 있는 것인가. 웃는 얼굴의 악마가 있다면 저 사람이 분명하다고, 멀어져가는 오이카와의 뒷 모습을 보며 코마키는 마음속으로 이를 갈았다.

 

 영문을 모르는 니시노야가 무슨일이냐고 물어보고나서야 제 정신으로 돌아온 그녀는 아무일도 아니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말했으나, 그녀의 태도는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던 듯 영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정말로 아무 일 없었어?"
 "정말이라니까 그러네!"

 

 그럼 됐어. 버럭하는 코마키의 태도에 살짝 놀란 니시노야는 이쯤에서 그만 두기로 했다.

 

 "좋아, 그럼 마키 만두나 먹으러 갈까? 배고프지 않아? 내가 산다!"

 

 코마키는 그제서야 제대로 니시노야의 얼굴을 보았다. 아까 노야쨩 말고는 다 안다는 오이카와의 발언이 생각나 조금 서글퍼져 한숨을 쉬었다.

 

 언제쯤이면 이 소년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것인가. 물론 지금 이대로 그와 나란히 서서 걷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수호신이라 불리는 소년에게 소녀는 특별한 친구였으니까. 하지만 친구에 그치고 싶지 않다고 항상 생각했다. 언젠가 소년에게, 수호신에 걸맞는 여자친구가 될 날을 소녀는 언제나 꿈꾸고 있다.